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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 아닌 권력 보호?… 이재명 대통령 재판 연기, 헌법 정신에 반하는 결정 최득진 주필 2025-06-11 06:58:47

♦ 서울고등법원 전경(이노바저널 DB)


서울고등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파기환송심을 무기한 연기하면서, 그 결정의 법적 근거와 헌법적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재판부는 헌법 제84조를 내세워 재직 중 형사소추가 불가하다는 이유로 공판 기일을 ‘추후 지정’으로 미루었지만, 이는 형식적 논리를 내세운 정치적 판단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결정에서 법원이 실질적으로 우선시한 것은 ‘권력 보호’였다. 대통령이라는 지위가 가져야 할 법적 책임보다는, 권력자의 정치적 안정을 먼저 고려한 판단이었다는 분석이다. 이는 헌법 제11조가 보장하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의 재직 중 형사소추를 금지하고 있으나, 이는 대통령이 직무 수행 중 정치적 목적의 남용적 소추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조항이지, 대법원의 유죄 판결 후 선거를 통해 당선된 인물의 재판을 중단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더욱이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 이전에 이미 기소되었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도 유죄 취지의 판단이 내려진 사건이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재판 연기는 권력의 법 위에 존재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사회에 보내는 것이다.


재판부가 공정한 선거 환경 유지를 이유로 공판을 연기했던 과거 결정에 이어, 이제는 아예 재판 기일 자체를 무기한 연기함으로써 법원의 자기 책무 포기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법원이 헌법이 부여한 권력 감시 기능을 스스로 유예한 셈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서로를 견제하며 작동하는 원리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라 해도 그가 법률을 위반했다면 사법적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기본 정신이다.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들이 대통령을 포함한 최고 권력자라도 예외 없이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이번 서울고법의 결정은 대한민국이 과연 법치주의 국가인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흐름은 장기적으로 사법에 대한 신뢰 붕괴, 권력에 대한 면책 문화 강화, 정치권력의 사법 지배라는 삼중의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결정을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되면 죄도 멈춘다”는 조롱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법원이 선택한 ‘정치적 고려’는 단기적으로는 갈등 회피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대가로 헌법 질서와 국민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진정한 법치국가는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오직 법에 따른 판단을 내리는 곳이다. 지금 한국의 법원은 그 기준에서 한참 멀어지고 있다. 이번 판단은 단순한 기일 연기가 아닌, 대한민국 사법의 퇴행을 보여주는 중대한 경고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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